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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리 레드냅 (Harry Redknapp) - 감독 경력과 자세한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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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 레드냅 감독은 친숙한 감독입니다.

 원래 인지도가 있는 감독이기도 했거니와 현재는 QPR의 감독이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이 감독의 자세한 경력과 정보를 알아볼까 합니다.

 

이름: 해리 레드냅 (풀네임: Henry James Redknapp)

나이: 66세 (1947년 3월 2일생)

국적/출신: 잉글랜드 런던의 폴러.

선수 커리어: 미드필더로 뜀. (토튼햄->웨스트햄->본머스->브렌트포드->시애틀 사운더스->본머스)

감독 커리어: (본머스->웨스트햄->포츠머스->사우스햄튼->포츠머스->토튼햄->QPR)

 

 

1. 선수, 해리 레드냅

 

 번 글에선 선수 해리 레드냅이 아닌 감독 해리 레드냅을 다룰 생각이므로 선수시절은 간단히 요약하겠습니다.

 

 해리 레드냅은 토트넘에서 유스 생활을 한 후 웨스트햄에서 프로계약을 맺고 뛰었고, 미드필더로 뛰었습니다.
 그리고 본머스브래드포드, 시애틀 사운더스를 거쳐 선수 생활을 은퇴했습니다.

 

해리 레드냅의 선수 시절 출장 기록.

웨스트햄시절 175경기 8골

본머스 시절 114경기 6골

프랜드 포드시절 1경기 출장

시애틀 사운더스 시절 24경기 출장

본머스 시절 2경기 출장.


 실 레드냅은 선수로써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습니다.

 레드냅의 두 번째 팀인 본머스는 당시 잉글랜드 3부리그에 있던 팀이었을 뿐입니다.

 

 다행히 레드냅은 감독으로써 성공을 거뒀고, 축구 선수의 한은 아들인 제이미 레드냅과 조카인 프랭크 램파드가 어느 정도 해소해줬을 겁니다. 

 히 제이미 레드냅은 한국팬에게 상대적으로 낯설 수 있지만, 이 선수는 미드필더로 패싱력이 좋고 호쾌한 중거리슛과 킥력을 보여준 훌륭한 미드필더였습니다.

 잉글랜드 국가대표팀 출신이기도 했고요. 

 만 잦은 부상을 당했던 게 흠이었고, 결국 부상을 당한 동안 신인이었던 제라드에게 밀려 토튼햄으로 떠났고, 후에 부상으로 은퇴하긴 했습니다. (현재 제이미 레드냅은 칼럼니스트를 하고 있습니다.)

 

 뭐, 램파드는 설명이 필요 없겠지요?

 

2. 감독, 해리 레드냅

 

1. 지도자의 길을 걷다.

 

 리 레드냅은 선수 시절의 마지막을 보냈던 시애틀 사운더스에서 코치직으로 감독 수업을 시작했고, 경험을 쌓은 후 1982-1873 시즌부터 본머스에 코치로 합류했습니다.


 레드냅은 코치로써 데이비드 웹 감독을 보좌하며 본머스에서 육년을 보냈습니다.
 그리고 전환기가 찾아오는데, 데이비드 웹이 토키 유나이티드로 옮겨 가며 감독 대행으로 팀을 맡게된 겁니다. 

 록 시즌이 끝난 이후 돈 멕슨 감독이 본머스에 정식 감독으로 부임하고 레드냅이 원래의 코치직으로 돌아가지만, 멕슨 감독이 극심한 성적 부진을 겪으며 경질되면서 레드냅이 다시 감독 자리를 되찾습니다.

 

2. 강등 극복 - 팀 전력 상승의 전문가가 되다.


 드냅 감독은 멕슨 감독이 망쳐서 강등 위기에 있던 팀을 간신히 구해내고, 동시에 FA컵 3라운드에선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2대0으로 이기는 이변도 연출합니다.

 

 그 이후에도 레드냅은 꾸준히 본머스의 전력을 유지해 중위권을 유지하고 1986-1987 시즌엔 잉글랜드 3부리그에서 97승점 우승이라는 최고 승점 기록을 세우며 2부리그로 승격하는 영광을 맛 봅니다.


 게다가 2부리그로 올라간 후에도 꾸준히 좋은 경기력을 보여주는데, 그 덕에 웨스트햄 유나이티드 감독직에 연결되기 시작합니다.

 특히 레드냅은 웨스트햄에서 오랜 시간을 선수로 뛰었던 지라 인연이 있어서 더욱 유력한 소문이었죠. 

 지만 레드냅은 웨스트햄 유나이티드로 가지 않았습니다.

 다만 2년 후에 중위권에 머물던 본머스는 팀의 전력 누수와 함께 3부리그로 강등을 당하고 맙니다.

 또한 그 시기에 해리 레드냅 감독은 차 사고로 부상을 당하고 (엄청 큰 사고여서 레드냅을 제외한 사람들이 모두 사망했고, 레드냅은 이 사고로 후각신경을 영영 상실했습니다.) 결국 1991/1992 시즌에 본머스 감독직을 사임합니다.

 

 공백기를 가진 해리 레드냅 감독은 다음 시즌이 되자 곧바로 웨스트햄에 코치직으로 복귀합니다.

 그리고 당시 웨스트햄의 감독이던 빌리 본즈 감독 밑에서 보좌를 했죠.


 레드냅은 감독에서 떨어질 수 없는 운명인지 1994년에 기회를 잡게 되는데, 웨스트햄 보드진이 빌리 본즈를 행정직으로 보내며 레드냅에게 감독 자리를 넘겨준 겁니다.


 감독 자리를 잡자마자 레드냅은 프리미어리그에서 경쟁력을 갖춘 웨스트햄 유나이티드의 아카데미를 이용하기로 합니다.

 레드냅은 재능있는 선수들을 대거 발굴했습니다.

 리오 퍼디난드, 조 콜, 마이클 캐릭, 그리고 프랭크 램파드가 그 일원이죠. 

 시에 스튜어트 피어스(현 잉글랜드 U-21 감독.)파울로 디 카니오(이번에 새로 부임한 선더랜드 감독), 트레버 싱클레어와 계약을 맺으며 비상을 준비합니다.

 웨스트햄은 그 해에 돌풍을 일으켰고, 1997/1998 시즌 8위를 기록했습니다.

 

*여담이지만 당시 웨스트햄엔 저메인 데포, 프레드릭 카누테, 수케르가 있었습니다.


 리고 레드냅은 여세를 몰아 다음 시즌엔 5위까지 기록하며 인터토토컵 진출권을 따냈고, (인터토토컵은 UEFA 대회에 못 나가는 팀이 여름에 벌이는 대회로 2008년을 마지막으로 사라짐) 인터토토컵에서 우승까지 차지하며 UEFA 컵 진출권을 따냅니다.
 하지만 다음 시즌이 되자 웨스트햄은 끝 없는 부진을 하기 시작하고 결국 레드냅은 사임을 하게 됩니다.

 

 부지런한 레드냅은 사임 후 이듬해 곧바로 포츠머스의 스포츠 디렉터로 합류합니다.
 또한 대개의 커리어에서 그랬듯이 기존 감독이었던 그래험 릭스가 부진하자 레드냅이 2002년 새로운 포츠머스의 감독이 됩니다. (이젠 놀랍지도 않네요.)

 리고 2002-2003 시즌, 레드냅은 엄청난 능력으로 포츠머스의 프리미어리그 승격을 이끌었습니다. (여담이지만 이 때 강등팀이 레드냅의 전 팀인 웨스트햄이었습니다.)


 하지만 정작 프리미어리그 승격을 이끌었음에도 코치인 짐 스미스 거취 문제로 보드진과 다투다가 결국 2004년에 감독직에서 사임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사임 후 몇 주 후 레드냅은 다시 사우스햄튼에서 감독직으로 복귀합니다.


 포츠머스 팬들은 이에 격분하는데, 사우스햄튼과 포츠머스는 라이벌 클럽이기 때문이었습니다. 
 당시 사우스햄튼이 라이벌 팀의 감독이었던 레드냅을 데려왔던건 사우스햄튼이 강등 위기에 쳐해있었고, 레드냅이 강등 구원 전문가였기 때문이었습니다. 

 과론적으로 사우스햄튼은 잔류하지 못했고, 레드냅은 27년 동안 프리미어리그에서 강등되지 않았던 사우스햄튼의 역사에 오점을 남겼습니다.
 레드냅은 팀이 챔피언쉽으로 떨어진 후에도 함께하지만 생각보다 성적은 나오지 않고 다시 보드진과 마찰을 겪으며 다시 포츠머스로 귀환했습니다.

 

 그런데 레드냅이라는 남자, 참 재미있습니다.

 하필이면 포츠머스는 강등 위기에 쳐해 있었습니다.
 레드냅은 이번엔 실패하지 않았습니다.

 

 막판 10경기에서 6승 2무 2패를 기록하며 승점 20을 획득해서 꾸준히 최하위권이었던 포츠머스를 구해냈던 거죠.


 드냅은 포츠머스를 강등에서 구해낸 다음 시즌엔 팀을 9위에 안착하게 했습니다.
 게다가 알렉산드레 가이다막 구단주의 후원을 받으며 선수들을 모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탈락시키고, 결승전에선 카디프 시티를 상대로 은완코 카누가 골을 넣으며 FA컵 우승을 차지합니다.  

 

 *당시 포츠머스의 스쿼드는 탄탄했습니다.

 카누, 저메인 데포, 디아라, 디스탱, 카불, 크란챠르, 글랜 존슨, 숄 캠벨 등이 있었죠.

 레드냅이 대부분 데려왔습니다.

 선수 보는 눈이 있는 감독입니다.

 런 레드냅에게 주목한 클럽이 있었으니 2008년의 토트넘입니다.
 당시 토트넘은 제가 아직도 치를 떠는 감독, 후안데 라모스가 팀을 말아 먹고 승리를 하지 못하며 강등권에 쳐져있는 상태였습니다.


 특히 후안데 라모스는 기존의 훌륭한 선수들을 모두 팔아버리고, 자기만의 선수들을 대량으로 데려왔지만 융화되지 못하며 망해가고 있는 상태였습니다. (참고로 이 때 이영표 선수도 주전에서 밀려나 도르트문트로 떠났습니다.)

 토트넘은 강등 탈출 전문가 해리 레드냅을 데려오기 위해 500만 파운드를 위약금을 포츠머스에 지불했습니다. 

 드냅은 기대에 부응해서 그 시즌에 토트넘을 강등에서 구해내고 장기 계약을 맺습니다.

 초반에 후안데 라모스가 망쳐놨던 걸 생각하면 놀라운 일입니다.

 

3. 상위권 팀의 감독이 되다.


 드냅은 다음 시즌엔 저메인 데포를 포츠머스에서 1575만 파운드에 데려오고, 팔라시오를 위건에게서 1200만 파운드에 데려오고, 카를로 쿠디치니를 첼시에게서 자유계약으로 데려와 스쿼드를 두텁게 했습니다.

 그리고 선더랜드에 있던 파스칼 심봉다를 300만 유로에 데려오고, 로비 킨을 리버풀에게서 1200만 파운드에 데려옵니다.

 
 토트넘은 전력 보강을 통해 8위로 시즌을 마치고 유로파리그 진출권을 따냅니다.
 그리고 레드냅은 대륙 대회까지 병행하기 위해 선수 보강을 더 합니다.

 

 대런 밴트선더랜드에게서 1000만 파운드에 데려오고, 디디에 조코라를 775만 파운드에, 피터 크라우치니코 크란챠르를 포츠머스에게서 각각 900만 파운드와 200만 파운드에 데려옵니다.

 그리고 뉴캐슬에서 세바스티앙 바송을 800만 파운드에 데려오죠.

 그 시즌에 토트넘은 대박을 쳤습니다. 

 드냅 감독은 챔피언스리그 예선 진출권이 주어지는 4위를 차지했고, 프리미어리그 올해의 감독상을 받습니다.

 참고로 레드냅은 잉글랜드 올해의 상 역사에서 두 번째로 우승 타이틀이 없는 감독이라고 합니다.

 

 챔피언스리그에서도 토트넘의 돌풍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토트넘은 예선을 거쳐 본선에서도 인테르를 털어버리며 (그 유명한 마이콘이 베일에게 털린 경기.) 조 1위로 진출했고, 16강 토너먼트에서 AC밀란을 1대0으로 이기며 올라가지만 아쉽게도 8강에선 레알 마드리드에게 종합 스코어 5대0의 굴욕적인 패배를 당합니다.


 게다가 그 시즌엔 리그에서 5위를 기록하며 챔피언스리그 진출에 실패했죠.

 그리고 다음 시즌이 되자 토트넘은 거의 영입을 하지 못합니다.
 기껏해야 각 포지션 별로 1명 씩을 영입했을 뿐인데, 그게 바로 40살의 노장 프리델과 맨시티의 스트라이커 아데바요르, 그리고 스콧 파커였습니다. 

 런데 이 영입은 결과론적으로 신의 한수였고, 이적생들이 속된 말로 '미치면서' 승승장구하면서 우승도 가능하다는 말이 나왔습니다. (일각에선 토트넘의 중원이 포화 상태라 파커 영입에 의문을 가지던 의견도 있었는데, 파커는 대활약을 해줬죠.)

 그 활약 덕에 레드냅은 잉글랜드 국가대표팀 감독직을 맡아야 된다는 말도 나왔죠.
 하지만 아스날과의 더비전 패배 이후 나락의 길을 걷더니 결국 DTD(떨어질 팀은 떨어진다.) 해서 4위로 시즌을 마쳤고, 하필이면 첼시가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해버려서 유로파리그로 가야 했습니다.

 

 결국 토트넘 보드진은 레드냅과 함께 하지 않기로 합니다. (후임으로는 보아스 감독이 왔습니다.)

 

→ 레드냅의 후임 보아스 감독 정보 보러 가기 [클릭] 

 

 리고 쉬고 있던 레드냅은 마크 휴즈 감독이 경질된 QPR로 다시 옵니다.
 이번 임무 역시 강등 탈출이지만, 현재 QPR은 사실상 강등이 확정된 상태입니다.

 

3. 해리 레드냅의 감독 능력

 

 리 레드냅은 전통적인 잉글랜드식 감독입니다.

 감독이 모든 권한을 쥐고 있으며 간섭을 받지 않는 것을 중요시 여기고, [레드냅은 간섭하는 보드진 때문에 2번이나 감독직을 사임한 경험이 있습니다.] 팀을 장악하는 걸 좋아합니다.

 

 그 장악의 일환이 QPR에서 있었던 구세대 선수에게 힘을 실어주는 거였는데, 이 부분은 나중에 다루겠습니다. 

 한 레드냅은 전통적인 잉글랜드 전술을 좋아합니다.

 

 현대 축구에선 클래식 윙어가 점점 사라지고, 안쪽으로 파고들어 플레이메이킹을 하거나 득점을 하는 측면 자원들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레드냅은 빠르고 시원시원한 측면 플레이를 해줄 수 있는 측면 선수를 선호합니다. 발도 빨라야 하고요. (이 성향이 박지성 선수에겐 악재였습니다.)

 

 그리고 중원에선 테크니컬하거나 센스 있는 선수들을 쓴다기 보단 투박해도 부지런하고 팀의 살림꾼의 될 수 있는 선수를 기용하죠.

 

 투 톱 역시 빅-앤 스몰 조합을 좋아합니다.

 

 또한 레드냅은 기본적으로 수비부터 우선시하는 경향이 있고, 수비를 정돈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레드냅이 무승부가 많은 데엔 이유가 있습니다.)

 

 실제로 휴즈 감독 시절 QPR은 어이 없는 세트 피스 골도 먹히고 중앙 라인이 부실했었는데 레드냅 감독이 전술을 바꾼 이후로 그나마 수비력이 괜찮아졌습니다.

 물론 괜찮아진게 그 정도였지만요.

 

 다만 레드냅의 공격 전술은 선수에게 의존하는 면모가 있는데 대개 믿음직한 선수들에게 자율을 주고 풀어 놓는 타입입니다.

 

 레드냅의 제자였던 선수들이 한결 같이 말하기를, 레드냅은 구체적인 지시를 하지 않는다고 하죠.

 그저 동기부여를 해주는 타입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레드냅을 보면 과거의 팀에서 인연이 있던 선수들을 믿고 쓰는 경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또한 로테이션을 잘 안 돌리고 주구 창창 베스트 11을 돌리는 성향도 있고요.

 

4. 해리 레드냅의 기록


감독 기록.

본머스 457경기 180승 107무 170패 (39.9% 승률)
웨스트햄 327경기 121승 85무 121패 (37% 승률)
포츠머스 116경기 54승 26무 36패 (46.55% 승률)
사우스햄튼 49경기 13승 21무 15패 (26.53% 승률)
포츠머스 128경기 54승 29무 45패 (42.19% 승률)
토튼햄 198경기 98승 50무 50패 (49.49% 승률)
QPR 20경기 5승 8무 7패 (25% 승률.)


 본머스에서

잉글랜드 3부리그 우승 1회: 1986/1987 시즌
풋볼 리그 트로피 우승 1회: 1984년

 

웨스트햄 유나이티드에서
UEFA 인터토토컵 우승 1회: 1999년

 

포츠머스에서
잉글랜드 2부리그 우승 1회: 2002/2003 시즌

FA컵 우승 1회: 2008년

 

토튼햄에서
칼링컵 준우승: 2009년

 

개인수상
프리미어리그 올해의 감독: 2009/2010 시즌
프리미어리그 이달의 감독 7회 수상

 

 

 번 글에선 해리 레드냅의 감독 경력과 정보만을 다뤘다면, 다음 글에선 해리 레드냅을 이야기하는 칼럼을 써볼 생각입니다.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P.S 레드냅의 업적 중 베일의 갱생도 빼놓을 수 없지만 생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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