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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파온라인3 2010 시즌 카드 분석 5편

· · BSG_쓰윔

 

 

 

 

 

 

 

 

 

 

 

 

 2010 시즈널 카드가 출시된 이후, 2010 시즌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궁굼해하시는 분들이 계십니다.

 이번 시간은 그 궁굼증을 풀어드리는 2010 시즌 특집 5편입니다.

 

 

 리고 오늘의 주제는 2010년에 있었던 대한민국의 남아공 월드컵입니다.

 

 

1. 대한민국의 남아공 월드컵 이전

 

 드컵은 언제나 국민적인 관심을 불러왔습니다.

 축구를 좋아하느냐와는 관계 없이 모든 사람들이 어울릴 수 있는 화합의 장이기 때문입니다.

 히 2010년 남아공 월드컵은 더욱 각별했는데, 당시 대한민국 대표팀은 '황금세대'라고 불러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화려했기 때문입니다.

 

 

 '캡틴' 박지성 선수는 말이 필요 없는 대한민국의 스타였고, 월드컵 전의 09-10 시즌에도 활약 중이었습니다.

 

09-10 시즌 박지성 선수의출장기록

26경기 4골 1어시 (프리미어리그 17경기 3골 1어시 / UEFA 챔피언스리그 6경기 1골 / 커뮤니티 실드 1경기 / 칼링컵 2경기)

 

 히 그 시즌의 박지성 선수는 초반엔 경기에 거의 나서지 못했지만, 중반 이후 경기 출장을 하며 리버풀을 2대1로 꺾는 골과, 챔피언스리그에선 그 유명한 피를로를 지워버린 경기를 하며 상승세였습니다.

 

 

 한 상승세라면 이청용 선수도 빼놓을 수 없는데, 이청용 선수는 당시 볼튼 데뷔시즌이었지만 대단한 폼을 보여주며 붙박이 주전으로 활약했었습니다.

 

09-10 이청용 선수의 출장기록
40경기 5골 8어시
(프리미어리그 34경기 4골 6어시 / 칼링컵 2경기 1어시 / FA컵 4경기 1골 1어시)

 

 히 당시 프리미어리그에 진출한 한국인 선수들이 연이어 실패를 한 후라 기대감은 더욱 컸죠.

 

 

 리고 모나코에서 활약하고 있던 박주영 선수도 있었고, 셀틱으로 갓 이적했던 기성용 선수, 왼쪽을 굳건히 지키던 이영표 선수, 중원을 장악해줬던 김정우 선수, 엄청난 피지컬을 보여주던 차두리 선수 모두 그 당시의 국가대표였습니다.

 

09-10 박주영 선수의 출장기록
33경기 9골 6어시
(프랑스 리게1 27경기 8골 5어시 / 컵대회 6경기 1골 1어시)

 

 

 만 이런 황금세대임에도 당시 말들이 많았던 건 중앙 수비라인이었습니다.

 이정수 - 조용형 라인은 엄청나게 욕을 먹었는데 당시만 해도 평가전에서 좋지 못한 모습을 보여주며 자동문이라는 비아냥을 들어야 했습니다.

 

 게다가 당시 차출되었던 강민수 선수도 욕을 많이 먹었고요. 

 

 

 지어 뒷 배경을 이용해 국가대표에 승선한 것 아니냐는 말도 돌았을 정도니까요.

 

 그 뿐만 아니라 임명 과정이 매끄럽지 못한 허정무 감독님도 당시에 많은 욕을 먹어야 했습니다.

 히 허정무 감독님의 임명엔 협회의 입김이 많이 들어갔었고, 그 때문에 허정무 감독이 대표팀 감독이 된 후 기자들을 맞이한 자리에서 비난은 더욱 심했습니다.

 

 기껏해야 허정무 감독님이 내정된 이유는 FA컵에서 우승했으니 토너먼트에서 강하다라는 근거 밖에 없었는데 그나마도 리그에선 10위를 하던 팀이라 의미가 퇴색되었기 때문입니다. (참고로 당시 K리그는 14팀이었습니다.)

 

 그 외에 외국인 감독을 원했던 축구 팬들의 정서도 작용했고요.

 

 그래도 허정무 감독님은 대표팀을 맡은 후 나름대로 노력했습니다.

 

1. 선수들에게 자율을 주면서 밸런스 있는 축구를 했다는 것.

2. 축구 대표팀에 있는 권위주위를 완전히 타파하기 위해 박지성 선수에게 주장직을 맡겼다는 것.

3. 수비진엔 기량을 보기 보다 호흡을 중시해 욕을 먹으면서도 끝까지 중앙 수비라인을 밀고 나갔던 것.

4. 티키타카까진 아니더라도, 나름대로 중원에서 세밀한 플레이를 할 수 있게 했다는 것.

5. 대한민국이 경쟁력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세트피스 전술에 심혈을 기울인 것.

 

 럼에도 허정무 감독님은 여전히 욕을 먹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허정무 감독님은 무승부가 상당히 많았다는 것, 아시아 예선에선 압도적인 모습을 기대했는데 압도적이지 못했다는 것, 뚝심 있게 밀고 나간 수비라인이 불안정했다는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뭐니뭐니해도 가장 욕을 먹었던 부분은 2010년에 있었던 동아시아컵에서 중국에게 3대0으로 떡실신 당했을 때였을 겁니다.

 

 그래도 이런 비난 속에서 대한민국 대표팀은 남아공 월드컵으로 가는 예선을 통과했습니다.

 

 하지만 쉽지 않은 조에 배정을 받습니다. 

 로2004 우승국 그리스, 호화 선수진을 자랑하는 아르헨티나, 아프리카의 강호 나이지리아와 한조가 되었던 것이죠.

 

 그 때문에 황금세대임에도 1승이나 할 수 있겠느냐는 여론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런 걱정은 월드컵 본선 첫 상대인 그리스를 만날 때까지 이어졌습니다.

 

2. 16강으로 가는 길

 

 실 월드컵으로 향하면서 대표팀은 더욱 나아지고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평가전에선 연신 5대0으로 패배했던 히딩크호도 월드컵에 가까운 평가전에선 강호들을 상대로 좋은 모습을 보여줬던 것처럼요.

 

 허정무 호 역시 평가전에서 코트디부아르에게 2-0으로 승리하며 점점 나아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결실은 남아공 월드컵 첫 상대인 그리스전에서 맺게 되죠.

 

 그리스는 유로 2004에서 오토 레하겔 감독의 수비전술로 우승까지 차지했던 팀입니다.

 그만큼 수비와 역습에 일가견이 있던 팀이었고, 언론에선 연신 게카스, 사마라스니 하는 선수들을 조심해야 한다고 말들이 많았습니다.

 

09-10 티오파니 게카스의 출장기록

20경기 7골 (분데스리가 17경기 6골 / DFB-포칼 1경기 1골 / 유럽대회 2경기)

 

09-10 사마라스의 출장기록

42경기 13골 (스코틀랜드 리그 32경기 10골 / 컵 3경기 / 유럽대회 7경기 3골)

 

 다가 여전히 오토 레하겔이 지휘봉을 잡고 있어서 수비진이 두텁다는 우려도 있었고요.

 

 

 지만 대한민국은 차분했습니다.

 

 

 종적으로 선정한 베스트11을 내세운 대한민국은 그리스를 상대로 2대0으로 완승을 거뒀고, 전방에서 날린 아쉬운 찬스들만 없었다면 더 큰 점수차로 이길 수 있었을 정도로 훌륭한 경기력을 보여줬습니다.

 

 특히 이 경기에선 기성용 선수의 킥을 이정수 선수가 밀어 넣으면서 빠른 시간에 선제골을 넣었던 게 좋게 작용했지요.

 아래는 당시 그리스전에서 기록한 2골의 영상입니다.

 

 

 담이지만 기성용 선수는 사실 당시만해도 이적한 셀틱의 감독이 바뀌면서 위기를 맞았었는데, 이런 활약은 훗날 크게 도움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어진 아르헨티나 전은 안타까운 경기였습니다.

 허정무 감독님은 오른쪽 풀백인 차두리 선수가 테크닉 좋고 빠른 남미선수들을 막기 힘들다고 판단해서 오범석 선수를 기용하고 박지성 선수를 중앙으로 돌려 미드필더진을 강화하는 방식을 썼습니다.

 

 

 지만 아르헨티나는 너무 강했습니다.

 아르헨티나가 첫 경기에서 나이지리아를 오심으로 간신히 1대0으로 이긴 상황이라 한국 언론은 쉬운 상대라고 설레발을 떨었지만, 클래스가 달랐던 거죠.

 

 

 국 그 경기에서 메시와 자주 맞딱들인 오범석 선수는 많은 파울을 범하며 불안함을 자초했습니다.

 그리고 오범석 선수의 파울로 얻은 프리킥 상황에서 박주영 선수는 자책골을 넣었습니다.

 게다가 이과인에게 쐐기골까지 먹으며 한국은 완전히 흔들렸습니다.

 

 그나마 이청용 선수가 만회 골을 넣었고 (부부젤라 소리 때문에 아르헨티나 수비수끼리 콜이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그 이후에도 이과인에게 2골을 더 내주며 4대1 완패를 합니다.

 

 아래는 대한민국과 아르헨티나 경기의 하이라이트입니다.

 

 

 담이지만 그 경기에서 염기훈 선수는 절호의 1대1 찬스를 놓칩니다.(그래서 오-염 라인으로 불리우며 많은 비난을 받습니다. 염의족이라는 말도 듣고요.) 

 또한 이과인의 골 중엔 오프사이드 골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걸 감안해도 이기기 힘든 경기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여기에서 재미있는 게 경기 전엔 언론에서 '꾸준히 발전하는 대한민국과 꾸준히 추락하는 아르헨티나.' 'Don't Cry For me 아르헨티나' 등의 설레발을 치다가 경기 후엔 '세계 최강' 아르헨티나에게 패하다라고 기사를 냈죠.

 

 상황이 이렇게 되자 대한민국은 16강 진출을 낙관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경우의 수를 따져봐야 하는 상황이 된 거죠.

 

 그런 상황에서 대한민국의 마지막 상대는 나이지리아였습니다. 

 하지만 대한민국이 이 경기에선 패할 시에 자칫 나이지리아가 올라갈 수도 있는 상황이라 단두대 매치의 성격이 있었죠.

 

 한국은 좋은 경기력을 보여줬던 그리스 전 때의 라인업을 들고 옵니다.

 

 

 리고 나이지리아는 아래와과 같은 라인업을 들고 옵니다.

 

 

 고로 야쿠부 선수는 당시 에버튼에서 뛰던 스트라이커였으며 EPL에서 잔뼈가 굵은 훌륭한 공격수였습니다.

 EPL에서 100골 이상을 넣은 선수니까요.

 조셉 요보 역시 에버튼에서 뛰던 센터백이었습니다.

 

 그 뿐만 아니라 나이지리아의 전설 은완코 카누 선수와 우체 선수도 위협적인 상황이었죠.

 

 대한민국 대표팀의 경기 시작은 좋지 못했습니다.

 

 차두리 선수의 실책으로 첫 골을 먹히면서 흔들린 겁니다.

 그래도 이정수 선수의 '헤발슛'과 박주영 선수의 프리킥으로 역전에 성공했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아쉬운 점이 있었으니, 허정무 감독님이 2대1로 승리하는 상황을 굳히려고 김남일 선수를 투입해서 잠그기를 시도했습니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라인을 내리자 나이지리아의 경기력이 살아나기 시작했고, 교체 투입된 김남일 선수는 PK까지 내주며 동점골을 허용합니다.

 

 그나마 마지막에 야쿠부 선수가 '네가 가라 16강슛'을 쏴줘서 극적으로 16강에 합류할 수 있었습니다.

 아래는 나이지리아와 대한민국의 하이라이트입니다. 

 

 

 담이지만 대한민국의 16강엔 한 가지 천운이 더 작용했는데, 나이지리아가 그리스 상대로 잘 해놓고도 어이 없는 퇴장을 당한 후 그리스에게 역전패를 당했다는 겁니다.

 이 요소가 결과론적으론 대한민국에게 유리하게 작용했습니다.

 

 허정무 감독님의 16강이 대단하긴 했지만, 폄하 받는 것도 '천운'과 '대진운'이라는 요소 때문입니다.

 

 사실 그리스와 나이지리아는 대회 이전엔 무서운 상대로 인식되었으나, 정작 만났을 때 기대이하였던 것도 사실입니다.

 

3. 투혼을 불태웠던 대한민국

 

 한민국의 16강 상대는 남미의 우루과이였습니다.

 당시 우루과이는 화려한 공격진을 지니고 있었지만, 감독은 상당히 안정적으로 경기를 운영하던 편이었습니다.

 

 이에 대응하는 대한민국 대표팀은 박지성 선수를 공격형 미드필더로 옮기고, 김재성 선수를 추가로 기용해 중원 장악력을 높이려고 했습니다.

 

 

 루과이는 당시 08-09 시즌 피치치(스페인 득점왕)를 수상한 디에고 포를란과 에레디비지에를 씹어먹던 루이스 수아레즈가 있었습니다.

 

09-10 시즌 디에고 포를란의 출장기록
56경기 28골 10어시
(라리가 33경기 18골 7어시 / UEFA 챔피언스리그+예선 8경기 1골 2어시 / 유로파리그 9경기 6골 / 코파델레이 6경기 3골 1어시)

 

 

09-10 시즌 루이스 수아레즈의 출장기록
48경기 49골 24어시
(에레디비지에 33경기 35골 17어시 / 유로파리그+예선 9경기 6골 4어시 / 컵대회 6경기 8골 3어시)

 

 

09-10 시즌 카바니의 출장기록
37경기 15골 3어시
(세리에a 34경기 13골 2어시 / 코파 이탈리아 3경기 2골 1어시)

 

 

 히 당시의 포를란의 포스는 대단했는데, 클럽에서 잘하는 선수들이 국가대표팀에서 부진했던 것에 반해서 포를란은 국가대표에서도 좋은 경기력을 선보여서 더욱 무서웠습니다.

 

 당시 우루과이의 라인업은 아래와 같습니다.

 

 

 한민국은 우루과이를 맞아 분전했습니다.

 하지만 루이스 수아레즈에게 두 골을 먹히고 지고 맙니다.

 

 특히, 이 경기에서 흥미로웠던 건 대한민국이 우루과이를 '가둬놓고 패는' 형식으로 경기가 진행되었습니다.

 하지만 단순히 우루과이가 못했다기보단 '잠그기'에 열중하던 우루과이 감독의 의향도 많이 작용했던 것 같습니다.

 

 일례로 우루과이가 이청용 선수에게 동점골을 먹히자마자 오히려 우리나라를 가둬놓고 팼으며, 수아레즈가 동점골을 넣자 다시 수비로 전환하죠.

 

 아래는 대한민국과 우루과이의 하이라이트입니다.

 

 

 담이지만 경기가 끝나고 유니폼 교환이 있었는데, 수아레즈 선수는 박지성 선수에게 천진하게 달려가 유니폼을 요구하기도 했습니다.

 이 때까지만 해도 수아레즈가 이런 녀석일 줄은 몰랐을 겁니다.

 

 대한민국의 황금세대라 더 갈 수도 있었는데 하고 아쉬워할 수도 있겠지만, 16강에 간 것도 훌륭한 성과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2002년 4강 이후 우리나라 팬들의 기대치가 높아진 게 아닐까 생각도 들고요.

 

 16강도 대단한 업적입니다.

 

4. 월드컵 이후의 한국선수들과 2010 시즈널 카드

 

 2010 시즈널 카드로 나와 있는 한국 선수들은 4명입니다.

 박지성 선수, 이청용, 박주영, 차두리죠.

 

 이 선수들은 모두 2010 시즌이 현재보다 나은 선수들입니다.

 

 대표적으로 2010의 박지성 선수는 2012 박지성 선수보다 훌륭합니다.

 

 

10-11 박지성 선수의 출장기록
25경기 8골 7어시
(프리미어리그 15경기 5골 3어시 / UEFA 챔피언스리그 9경기 1골 2어시 / 커뮤니티실드 1경기 / 칼링컵 2경기 2골 2어시 / FA컵 1경기)

 

 히 기억하시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박지성 선수는 빨간 머리로 염색한 후 정열적으로 그라운드를 누볐고, 월드컵 이후의 시즌에선 대단한 활약을 하며 10골-10도움을 기록할 뻔도 했었습니다.

 물론 조광래 감독님의 잦은 차출로 인해 그 기록은 실패했지만요.

 

 그리고 2010의 이청용 선수는 EPL에서 보내는 두 번째 시즌이었습니다.

 흔히 말하는 '2년차 징크스'가 걱정될 법도 했지만, 이청용 선수는 놀라운 활약을 이어갔습니다.

 

 

10-11 이청용 선수의 출장기록
36경기 4골 8어시
(프리미어리그 31경기 3골 8어시 / 칼링컵 1경기 / FA컵 4경기 1어시)

 

 다가 2010의 이청용 선수는 톰 밀러에게 부상을 입기 전입니다.

 당연히 2010 시즈널 카드가 좋을 수밖에 없죠.

 

 그리고 박주영 선수도 2010년은 뜻 깊은 해였습니다.

 

 모나코에 정착해서 골을 넣던 시기였고, 팀은 강등되었으나 본인은 두자릿수 골을 넣으며 뜻 깊은 시기를 보냈었습니다.

 

 

10-11 박주영 선수의 출장기록
35경기 12골 2어시
(프랑스 리게1 33경기 12골 2어시 / 컵대회 2경기)

 실 지금의 몰락을 생각해보면 2010 박주영이 2012 박주영보다 좋을 수밖에 없습니다.

 

 마지막으로 차두리 선수는 2010년 월드컵 당시 다음으로 합류할 팀을 정하지 못한 상태였습니다.

 

 하지만 월드컵에서 활약 덕에 셀틱으로 이적할 수 있었습니다.

 

 그 정도로 2010년의 차두리 선수는 대단했지요.

 특히 차두리 선수는 당시에 3-4명을 "몸싸움"으로 뚫고 가며 차미네이터라는 애칭을 얻을 때였습니다.

 

 

10-11 차두리 선수의 출장기록
21경기 1골 1어시 (스코틀랜드리그 16경기 1골 / 챔스예선 2경기 / 유로파리그 예선 2경기 1어시 / 리그컵 1경기)

 

 파온라인3에서 나온 2010 차두리 선수는 피지컬이 굉장히 훌륭한데, 당시의 활약을 보면 납득이 갈 만도 합니다.  

 

 

P.S 기성용 선수는 남아공 월드컵 이후 주전경쟁이 더 수월해졌습니다.

P.S2 개인적으로 아쉬운 게 있다면 2010 김정우 선수가 없다는 겁니다. 남아공 월드컵 때 김정우 선수는 대단한 기여를 했지요.

 

* 이 글은 피파온라인3 게임조선에도 올라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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